'인류를 각성시킨 커피의 마력' 유래·산지 등 흥미롭게 풀어내
▲ 박영순 지음, 유사랑 그림, 인물과 사상사, 368쪽, 1만9000원
커피를 놓고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오래도록 경쟁을 벌였다. 아프리카냐 아라비아반도냐, 그리스도 국가냐 이슬람 국가냐의 자존심이 걸린 논쟁이기도 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지만, 최초로 재배한 곳은 예멘이다'라는 절충안이 나오긴 했다.

인류는 커피를 사랑해 왔다. 미국의 작가 마크 펜더그라스트가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원자재로서 지구에서 오일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커피"라고 말하기도 했다. 커피의 무엇이 인류를 이토록 매혹시키는 걸까?

새책 <커피인문학>(인물과 사상사·368쪽)은 커피를 통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이 책은 커피에 대한 교양과 상식, 이야기 소재의 제공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커피인문학은 커피에 대한 또 하나의 발견이다.

이 책은 커피를 통해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한다. 커피를 통해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첫날밤을 엿본다. 또, 커피를 통해 수피가 알라를 접신(接神)하려는 몸부림을 목격한다. 커피를 통해 새벽길 상궁 복장을 하고 가마에 오르는 고종의 눈물을 보기도 한다. 커피를 통해 1937년 4월 도쿄의 교도소에서 피를 토하며 스러진 시인 이상의 영혼을 만나고 해방에서 현재까지 온갖 불화(不和)를 거쳐온 겨레의 궤적을 좇는다.

우리나라와 커피의 인연도 흥미롭다. 책은 계몽의 힘을 가진 '커피의 마력'을 외교에 활용한 고종과 정동파, 조선인 최초로 다방을 차린 이경손, 천재 시인 이상의 활동이 그린다. 고종은 손탁에게 정동의 땅과 한옥 한 채를 하사해 외교관들을 맞는 공간으로 활용하게 했다.

고종이 손탁에게 서양식 침실과 카페를 만들게 하는데,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이곳을 사실상 영빈관으로 활용하며, 정동파 인사들로 하여금 나라를 지키기 위한 외교전을 펼치게 한 것이다. 손탁호텔의 레스토랑은 당시 외국 인사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정동파는 이곳에서 외교관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친분을 쌓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친미·친러 인사들이 주축인 정동파는 조선 외교 상징이 된다. 고종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이야기꽃을 피워내는 '커피의 마력'을 외교에 적극 활용한 것이다.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다방을 차린 인물인 영화감독 이경손은 1927년 안국동 네거리 근처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열었다. 카카듀는 일제강점기에 시대적 각성과 조선인 간 문화 교류를 시도한 곳이었다.

이경손은 "카카듀는 프랑스혁명 때 계몽주의 사상가와 시민들이 당국의 감시를 피해 몰래 만난 비밀 아지트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했다. 그는 나운규를 발굴하고, 조선일보에 영화소설 '백의인'을 연재하기도 했다.

시인 이상은 제비다방, 카페 쓰루, 무기 등 다방을 열어 문인들의 모임 장소와 지식인과 일반인의 교류 장소로 활용하면서 끊임없이 창작과 계몽의 혼을 불살랐다. 이상의 다방은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킨 아지트였다.

제1장에선 커피가 에덴동산에서 시작돼 예멘, 에티오피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라크,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미국을 거치면서 일으켰던 풍파를 추적한다. 카페인을 통해 인류를 각성시키면서 벌어진 에덴동산 추방을 비롯해 미국독립혁명, 프랑스혁명, 오스트리아 빈 전투 등이 그것이다.

제2장에선 한국의 커피 역사를 살펴본다. 누군가의 뇌리에 진하게 박혀 있을 일제 식민사관을 뒤집으려 애썼다. 제3장은 커피에 취미를 붙이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며 커피 산지에 대한 이야기는 4장에 펼쳐졌다. 박영순 지음, 유사랑 그림, 1만9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