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나라 대표변호사
현직 헌법재판관 신분으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국회 동의에 필요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해 '후보자' 딱지를 뗀 채 여전히 권한대행 지위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뽑아 9명이 정원인 헌재의 수장이 궐위하는 장기간의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과정에서 대리인단은 9명의 구성원을 모두 갖추지 못한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결정은 원인무효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299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이라도 출석하지 않으면 국회의 모든 법안심리와 의결은 모두 무효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내용이 아니라 절차부터 정당성이 다투어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서는 헌법재판관 9명 중 공석인 1명,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신임 헌법재판소장을 신속하게 대통령이 임명할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헌법재판을 장기간 공전시키거나 '대행'에게 헌법재판소의 운영을 맡기는 것은 헌법재판의 중요성에 비추어보면 결코 타당한 일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사법기관이다. 헌법재판관의 임명에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 등 중요 정부기관들이 관여한다는 의미에서는 정치기관이며, 모두 법관의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는 사법기관인 셈이다. 정치적 사법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는 심리 및 결정의 절차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민·형사소송의 절차를 엄격하게 따르고 있지만, 다루고 있는 부분은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일거에 변화시키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정치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정과 뒤이어 불과 2개월 이내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과정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분립 위에 헌법재판소가 놓여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탄핵을 통해 대통령을 위시한 고위직·선출직 공무원을, 위헌법률심사를 통해 국회를, 헌법소원을 통해 법원,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정치적 사법기관이다.

막강한 힘을 지닌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우연과 필연이 겹쳐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는 애초 우스운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된다. 폭압적인 전두환 정권 말기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에 밀린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6·29선언으로 시작된 개헌정국에서 여야 대타협 산물의 하나로 헌법재판소는 탄생하게 된다.

국회가 만든 법률을 헌법위반으로 심판할 수 있는 위헌법률심사제, 해임이 어려운 고위직 공무원을 그 자리에서 쫓아낼 수 있는 탄핵심판, 현대 정치의 중심인 정당을 송두리채 해산할 수 있는 정당해산, 국가기관간의 권한쟁의심판,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구제해 주는 헌법소원 등 막강한 권한을 헌법재판소가 관장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말만 번지르르한 웃기는 헌법기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8년에야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돼 헌법재판소는 걸음마를 시작했다. 가장 늦게 생긴 최고 국가기관의 하나인 헌법재판소는 재산권에 대한 헌법소원을 중심으로 점차 심판의 범위 및 권한을 확대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법률가들은 헌법재판소가 재산권보호에 대해서는 과중한 관심을 두는 반면 인신에 대한 분야에 대해서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의 기능은 법률에 대한 엄정한 심사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민의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는 헌법소원에 대한 심판을 통해 국민의 구체적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으로부터 독립돼 있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경우 그 기능이 합쳐져 있는 일본의 최고재판소에 비해 헌법소송이 훨씬 활발하다.

다양한 사회적 가치의 해석과 이에 대한 폭넓은 논쟁,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한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그 사회의 고유한 가치관을 지켜내야 하는 이율배반이 헌법재판소의 의무이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경험을 한 분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토대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헌법재판의 과정이다.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임명동의를 하는 과정, 헌법재판관에 대한 인사 청문의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철학, 헌법적 가치에 대한 신념, 사법기관의 독립을 위한 진지한 열정 등을 확인하거나 거칠게 추궁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이제 대한민국 국회는 이유정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정,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거부를 통해 국회의 권위와 권능을 충분히 대내외에 과시했다. 다시 토론의 자리에 돌아와 국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청문, 임명동의 과정을 진행해 헌법재판소의 공백상태를 최소화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헌법재판소의 기능은 다른 국가기관과 마찬가지로 멈추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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