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
"빚 갚았다고 빛이 나나?" 며칠 전 한 복덕방 사장님이 불쑥 던지신 말씀이다. 인천시가 빚 총 13조원 중 3조를 넘게 갚았다는 이야기를 동네 어르신들과 나누던 중이었다. 재정위기를 탈출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말씀인 것 같았다. 하긴 인천은 파산해 본 적이 없다.

인천시가 이제 재정 '위기주의'도시에서 벗어나게 된다. 전국 유일의 오명이었다. 한 때 39.9%까지 올랐던 예산대비 채무비율이 24.1%까지 떨어졌다. 40%가 넘으면 재정 '위기도시'로 낙인이 찍혀 중앙정부의 재정식민지(植民地)가 된다. 40억원 이상 사업은 일일이 행정안전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주민을 위한 새로운 사업은 사실상 '올 스톱'된다. 예를 들어 중학교 무상급식이나 경인고속도로 일반도로화 사업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인천의 재정위기는 무분별하게 재개발사업을 벌이고 경기장을 만들고 국제행사를 치르는 동안 커졌다. '설마 우리가 파산하겠나?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도 정부가 가만히 있겠나?'하는 도덕적 해이도 한 몫 했다. 부채란 종양은 경제가 부풀어 오를 때는 안 보였지만 쪼그라들 때에 결국 불거졌다.

지난 3년간 시 정부는 결연했다. 국비를 더 많이 따오고, 차량등록 유치 등 세수를 늘리고, 공무원 수당을 삭감하며 세출을 줄였다. 시에서 지원을 받는 자생단체나 교육청, 군청, 구청의 불평도 묵묵히 버텼다. 다행히 경기가 좋아 지방세도 늘었다. 최근 시 자료를 보니 이제 2014년에 비해 군·구에 3700억원을, 교육청에는 3100억원을 더 줬다.

도시의 살림이 어려워지면 누가 제일 어려움을 겪을까?

미국 디트로이트는 2013년에 파산했다. 자동차 산업으로 번창을 누리던 1950년대에 백인과 흑인의 인구 비율이 9:1 이었지만 이제 거꾸로다. 거대도시 중 가장 빈곤하다. 중산층은 떠났다. 세수도 준다. 파산한다. 도시를 떠날 수 없는 가난한 주민들이 복지 혜택을 덜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유바리시는 단골 사례다. 번성하던 광산이 폐광하니 폐광을 이용한 관광사업에 무분별하게 '올인'을 했다. 감당하지 못해 2006년에 파산했다. 체육시설 사용료를 50% 올리고, 하수도 사용료도 66%나 올렸다.

공중화장실 7개 중 5개를 문닫고 시립도서관도 폐관했다. 초등학교 7곳을 1곳으로 통폐합했다.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 우대도 폐지했다. 역시 일선 주민들이 제일 큰 피해를 입었다. 우리도 절실한 노력으로 이겨내지 못했다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인천은 수렁 속에서 버티고 있었다. 이제 도약의 발판 정도는 생긴 셈이다. 대의기관에 대한 실망이 표출된 것이 지난 대선이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경제도 직접민주주의화를 한다.

경제민주주의에는 자원의 배분을 시민들에게 묻고 결정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본다. 결과를 정해 놓고 통과의례로 책임만 나누는 식보다 실효적이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재정법에 충분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곧 시는 주민들이 건의한 사업을 우선적으로 선정한 각 국별 사업을 시행한다고 한다.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는 20년 전부터 지방자치를 하고 있지만 주도적 권한은 늘 중앙에 있었다. 정부도 OECD국가 평균수준으로 지방세수를 늘려 재정분권을 현실화해야 한다. 현재 전국 지자체 평균 50% 정도 자립도로는 지방의 책임재정이 어렵다. 책임을 물으려면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빚의 지배를 영어로 크레디토크라시(Creditocracy)라고 한다. 우리가 신용카드를 긁을 때마다 사실은 은행에 빚을 진다. 개인의 주택담보 대출, 기업의 운전자금 대출, 지자체 출연 공사의 부채, 국가 부채 등 빚은 숙명이다. 부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명한 지출이 필요하다. 짜임새 있는 재정이 필수다. 인천은 인구 300만명으로 아주 큰 도시다. 고른 발전을 중심에 놓아야 하고, 특정 지역의 볼모로 잡히면 안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어가야 한다. 이제 '빚'문제가 가닥을 잡았다. 어둠의 터널 한끝에 '빛'이 보이는 까닭이다.

/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