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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문화프리즘] 오래된 '갑질'

김학균의 문화프리즘

2017년 09월 14일 00:05 목요일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가 벌인, 공관병을 상대로 한 '갑질' 여파가 식을 줄 모르고 군 내부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급기야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부처의 '갑질 문화'를 점검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관행은 군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공직사회에도 만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갑질'은 권력을 쥔 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부당함을 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거리'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그런데 왜 '갑질'일까. 아마도 우리는 오래 전부터 계약서나 협정서를 작성할 때 '갑'과 '을'로 표시된 일본식의 잔재를 써 왔다. '갑'은 주인 격이었으며 '을'은 계약이나 협정에서 수탁이나 업무를 수행하는 쪽으로 약자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구습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한다.

계급사회의 군대는 진급으로 계급장이 바뀌는 만큼 권력이 커가며 사람이 변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오래된 관습이 문제이다. 이 관습을 타파시켜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재발의 적폐는 없어야 할 것이다.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공관병이 자살기도까지 한 사례를 보더라도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관존민비 사상'이 엄격했다. 그 시대에 정점을 찍은 양반의 행패는 조선후기 실학자 박지원(1737~1805)의 소설 '양반전'에서 잘 나타난다. 곧 '갑질'의 실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의 무신정변 (1170) 또한 차별대우와 '갑질'의 영향으로 의종을 폐위시키기에 이르렀다. 문신들의 우월의식이 빚은 '갑질'이 켜켜이 쌓여 적개심이 분출된 무신정변이었다.

조선 연산군 시절인 1498년에 일어났던 무오사화 역시 신분 제약이 큰 시대 서자 출신으로 조선조 5명의 임금의 후광으로 승승장구한 유자광의 '갑질'에서 비롯된 역사의 난으로 남고 있다. 그 후 21년이 지난 1519년의 기묘사화는 주초위왕(走肖爲王)으로 잘 알려진 사건.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중종(연산군의 이복 동생)의 총애를 받으며 현량과를 만들고 소격서를 폐지한 조광조를 죽이기 위한 술책이었다.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이라고 써 벌레가 꿀 바른 곳을 파먹게 해 이 이파리를 중종에게 진상하여 벌인 '갑질'의 대표 사화이다. 주(走)와 초(肖)를 합쳐 조광조의 조(趙)를 가리키니 곧 왕이 된다고 하였던 졸렬한 '갑질'이다.

대표적인 '갑질'은 또 있다. 궁정동 안가의 사건도 권력에서 비롯된 '갑질'이다. 그 사건으로 피를 부르고 그 당사자는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역사의 교훈으로 남아 있다.

좋지 않은 '갑질' 문화는 군대뿐 아니라 눈을 돌려보면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편의점의 점주와 종업원의 사이, 그리고 기업의 CEO와 직원 간이 그렇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청업자 간, 프랜차이즈 업종의 본사와 점주 간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만연하다. 현재 진행형이다.

이 '갑질' 문화를 뜯어 고쳐야 할 때다. 과유불급의 원칙을 지키며 옥석을 구분하는 개선책이 필요하다. 그만큼 쉼 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사구분 없는 태도를 미덕으로 여기는 유교문화의 공사미분화(公私未分化)를 씻겨내고 가족의 지위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동일시' 정신을 바로 잡는 가르침이 필요하다.

세상사 무엇보다도 사람이 먼저라는 개념을 가지고, 경영철학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수평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예술계를 온통 뒤흔들었던 '블랙리스트' 역시 갑질 문화에서 배제될 수 없다. 문화예술보다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천예총사무처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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