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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15 인천상륙작전 단상

박영애 인천시의회 의원

2017년 09월 13일 00:05 수요일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남북 관계가 최악의 순간에 도달한 요즈음, 9·15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해군 군번 1번 故 손원일(1909~1980) 초대 해군참모총장입니다. '해군의 어머니'는 그의 부인 홍은혜 여사이지요. 홍 여사와는 오래 전부터 유대관계가 있어 친밀한 사이였으나 아쉽게도 금년 4월19일 향년 100세로 별세하셨습니다.

홍 여사는 22세 때인 1939년 3월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음악과를 졸업하는 날 당시 30세인 손원일 제독과 결혼했습니다. 이후 손 제독은 현재 해군 창설기념일의 뿌리인 1945년 11월11일 해방병단(해군의 전신)을 창설하고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홍 여사는 그 순간부터 일평생을 해군과 해군장병, 그리고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해군의 어머니'로 존경을 받아 왔습니다.

해군 70여년 역사와 함께한 홍 여사께서 '해군의 어머니'로 사랑과 존경을 받은 것은 단지 손원일 제독의 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해군 군적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해군발전에 끼친 공헌은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공을 살린 다수의 군가작곡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홍 여사님께서는 초창기 해군 사관생도들이 일본 군가에 한국 가사를 붙여 군가를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직접 곡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들은 이 바다 위에 이 몸과 맘을 다 바쳤나니.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라는 구절의 해군 최초의 군가 '바다로 가자'를 비롯해 '해군사관학교 교가', '해방행진곡', '대한의 아들' 등 지금도 즐겨 불리는 군가 다수가 고인의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손원일 제독이 1945년과 1949년 해군과 해병대를 창설하였으나 전투함이 한척도 없어 이를 안타깝게 여겨 '함정 건조 기금 갹출 위원회'를 결성하고 사비를 털어 모금하기 시작하였지요.

홍 여사는 해군장병 부인들과 함께 삯바느질로 전투함 구매자금을 보탰으며, 해군 고위 간부를 비롯해 말단 장병, 심지어 생도들까지 봉급의 일부분을 기금으로 내자 이에 감복한 이승만 대통령이 돈을 보태 미국에서 중고 함선을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949년 12월26일 대한민국 해군의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6·25전쟁 발발 당일 동해로 긴급 출동하던 중 부산 동북방 해상에서 무장병력 600여명이 탑승하고 남하하는 1000t급였습니다. 이 대한해협 해전의 승리로 6·25전쟁 초기 적 게릴라에 의한 후방 교란을 미연에 방지하였고, 유엔군 병력을 비롯한 막대한 양의 전쟁 물자를 부산항으로 무사히 수송할 수 있었습니다. 이 대한해협 해전의 승리가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홍 여사 생신 축하연에서 홍 여사에게 손원일 제독께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기 전 집에서 무슨 말씀을 하고 나가셨느냐고 물으니, "중요한 회의가 있어 며칠 나갔다 올 테니 그동안 아이들 잘 돌보고 기다리고 있으시오"라고 말씀하시고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앞장서 싸우고 기꺼이 목숨을 바친 특수임무 수행자들과 수많은 호국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군경 유가족들에게도 국가와 국민이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경건한 자세로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극진히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합니다.

/박영애 인천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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