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3·1운동이 절정에 이르던 4월 초 장날에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려 제암교회 청년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따랐다.

일본 경찰은 무차별 사격과 매질을 가했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청년들과 마을사람들은 굴하지 않고 밤마다 제암리 뒷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함께 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는 4월15일 무자비한 보복을 가한다.

수원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헌병 30명이 몰려와 발안 장날 너무 심하게 매질한 것을 사과코자왔으니 15세 이상의 남자 신도들은 교회에 모이라고 했다.

이렇게 21명의 신도가 모이자 출입문과 창문을 밖에서 잠그고 석유를 뿌린 다음 불을 질렀다.

그리곤 교회를 포위한 채 집중사격을 가했다.

또 일본 헌병은 두 아낙이 남편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자 목을 벤 후 짚을 쌓아 시체를 불태웠다.

일본은 이에 그치지 않고 마을을 다니며 민가에 불을 질렀고, 이웃마을 고주리에서도 주민들을 마구 찔러 죽였다.

이날 제암리 사람, 가옥, 가축이 타는 냄새가 10㎞ 밖까지 퍼져 나갔다고 하며 불길은 멀리 오산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헌병들의 감시가 심해 누구도 희생자의 유해를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며칠 후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불탄 교회에서 유골을 수습해 인근 공동묘지입구에 묻을 때까지 시신은 방치됐다.

파스칼은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적이다"라고 했다.
두 번 다시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의 없는 힘이 함부로 할 수 없도록 국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교육 등을 통해 정신을 풍성하게 키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천문학 다큐멘터리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모든 사랑에 빠진 연인과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 모두는 우주 속 이 작은 점 위에서 살다 간다. 그러면서도 간절히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고 열렬히 증오하면서도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한다. 코스모스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김진효 경기도 문화유산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