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화도진도서관에서 '仁川'이란 잡지를 접했다. 1943년 7월호에 '인천 보국호 헌납식'이란 기사가 실렸다. "6월 6일 25만 인천 부민의 불타는 정성으로 헌납된 해군기의 헌납 명명식이 경성부 공설운동장에서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부윤을 비롯해 수 십 명의 인천부 헌납자들이 영광스런 식전에 참례하였다. 헌납한 단체는 인천부 외 19개에 달하는 성황이었다. 헌납기는 '제1인천부민호(함상폭격기)' '제2인천부민호(연습기)'라고 명명되었다. 식전에 참석한 기자의 가슴 속에도 25만 부민과 함께 '칠생보국(일곱 번 다시 태어나도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 감격의 눈물이, 비분의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일제강점기 조선 각지에서 헌납된 비행기는 모두 50여 대였다. 육군에 헌납한 군용기는 '애국기', 해군에 헌납한 것은 '보국호'라고 지칭되었다. 인천부(현 인천시) 유지들은 1932년 '인천제일호'라는 전투기를 처음 헌납했다. 위 기사는 10년 후 두 대의 보국기를 추가로 헌납한 것을 보도했다.
일제는 '군용기 헌납운동'을 독려했다. 그 일환으로 야구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애국기 헌납조성 야구대회가 1937년 9월 25·26일 양일간 경성운동장에서 열렸다. 관람료 전부를 애국기 '경기호' 제작에 헌금하는 이 대회에 인천군 등 4개 팀이 참가했다. 1938년 10월4일 월미도 해안에서는 조선미곡협회가 헌납한 '제일조선미곡호' 제2조선미곡호'의 헌납식이 거행되었다. 월미도는 보국기의 단골 헌납식 장소였는데 준요색지대(準要塞地帶)라는 이유로 사진 촬영을 절대 금지했다.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최근 서울시는 강제병합 체결 현장인 한국통감 관저 터에서 일제 신사 '조선신궁' 터에 이르는 1.7㎞ 구간을 '국치길'이라는 역사탐방로로 조성하기로 했다. 인천 곳곳에도 국치의 흔적이 있다. 다시 한번 냉정히 살펴보고 정리해서 알려야 한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천고의 역사를 회고하니/글을 아는 인간의 구실이 어렵구나.' 강제병합 소식을 들은 매천 황현이 자결하기 직전에 남긴 '절명시(絶命詩)' 한 구절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준엄하게 다가온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