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나라가 요구하면 생명까지도 바쳐야 한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나라의 부름이 있을지 개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운명인 것이다. 군인의 길 이외에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나에게 운명처럼 그렇게 나라의 부름이 찾아왔다." 이 구절은 지난 4일 광주지방법원에 의해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진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에 수록된 문구다. 1980년 8월22일, 그는 스스로 별 넷을 달고 대장으로 전역했다. 전날 오후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한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그들은 "불순세력의 조종 하에 민중봉기로 유도하려는 음모를 간파해 5·17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말하는 '민중봉기'란 5·18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재판부는 전 씨의 회고록 3권 중 1권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헬기 사격은 없었다", "북한군이 개입했다", "광주학살과 자신은 전혀 관련이 없었다"는 등 왜곡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33곳을 삭제하지 않고서는 이 책의 출판, 인쇄, 복제, 판매, 배포, 광고를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전 씨 측은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을 가처분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면서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의 인권수준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라고 반발했다. 헌법 제21조 4항이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돼야 한다.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금지는 원칙적으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표현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익이 목적이 아닐 경우,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쿠데타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흔들고, 역사상 가장 많은 금서와 출판탄압을 자행한 전두환이 출판·표현의 자유와 헌법정신을 운운하는 것은 5·18피해자만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 5·18진상규명과 그 범죄자의 처벌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자 처벌의 시효를 떠나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5·18정신을 계승한 공화국을 살아가는 국민 모두의 책임이며, 법률적 대응은 그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황해문화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