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작가의 장편 소설 '군함도'는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조선인 수천 명이 강제 징용된 해저 탄광이 있던 '군함도(하시마섬)'의 참상이 그려졌다. 2부는 등장인물들이 군함도에서 탈출해 건너간 규슈 나가사키(長崎)가 주 무대이다. 나가사키는 당시 일본의 군수 재벌 미쓰비시의 근거지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사용된 일본군 어뢰의 80%가 이곳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미국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 맨(fat man)'을 투하했다. 미쓰비시 조선소를 비롯해 일본 군국주의의 수많은 해군 군함을 건조하던 항구였기 때문이다.

이 나가사키가 인천과 '악연'을 갖고 있었다. 1875년 을해년(乙亥年) 9월20일, 일본 군함 운요호(운양호)는 강화도 초지진과 영종진을 기습 공격했다. 영종도에 상륙해 갖가지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분탕질을 끝내고 일본 해군의 모항 역할을 했던 나가사키로 돌아갔다. 이 운요호는 오페라 '나비부인'과 연관이 있다. '스코틀랜드 사무라이'라는 별명을 가진 영국인 토머스 글로버는 '나비부인'의 실제 모델인 일본인 이혼녀와 결혼한다. 그는 나가사키를 서구식 항구로 조성했고 영국의 조선소에서 여러 척의 배를 주문해 일본에 팔아넘겼다. 그 배 중 한 척이 바로 '운요호'다. 그는 1남1녀의 자식을 두었다. 그의 딸 '글로버 하나'는 영국인 무역상 남편을 따라 1896년 10월경 인천에 왔다. 그녀는 남편이 영국 인천영사를 겸했기 때문에 영국 인천영사관(현 올림포스 호텔 터)에서 생활했고 70세의 나이로 사망해 인천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일제강점기 미쓰비시는 인천 부평에 진출해 수많은 무기와 군수품을 생산했다. 공장 주변 동네의 이름은 아예 미쓰비시의 한자어인 '삼릉(三菱)'으로 바뀌었고 이른바 '줄사택'이라 불린 노동자 합숙소 수백 채를 건설하고 강제 노역을 동원했다. 얼마 전 부평 옛 미쓰비시 공장 터에 국내 첫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군함도-나가사키-미쓰비시- 운요호-영종진-나비부인-글로벌 하나-인천외국인묘지-부평 삼릉-강제징용 노동자상. 인천 곳곳에는 아직도 눈 부릅뜨고 봐야할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