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문제, 우리 손으로…" … '9·19공동성명' 주역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 회고록
▲ <빙하는 움직인다> 송민순 창비 560쪽, 2만7000원
새책 <빙하는 움직인다>(창비·560쪽)는 '9·19공동성명'의 주역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이 쓴 치열한 외교 현장 회고록이다.

4차 6자회담에서 도출된 9·19공동성명은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중지를 모아 한반도의 단계적 비핵화를 전세계에 공표한 협약이었다. 9·19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나아가 통일을 위한 동북아 외교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계획 포기'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 노력' 같은 합의 내용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방치돼 있다.

2016년 1월 이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한국과 미국의 사드 배치 결정,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또다시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저자에 따르면 분단 역사를 극복하려는 그동안의 시도는 늘 북한 핵이라는 암초에 걸려 넘어졌다. 그 밑에는 빙하처럼 얼어붙은 한반도 냉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오랜 대내외적 현실이었다.

저자는 책에서 북한 핵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장전(章典)으로 불리는 9·19공동성명의 합의와 이행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 외교가 어떻게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미래를 움직이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 살펴본다.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부터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4차 6자회담,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 같은 굵직한 계기를 징검다리 삼아 경수로, BDA 제재, 군사작전권 회수, 사드(THAAD) 배치, 소고기 협상 등 중요한 외교 쟁점을 폭넓게 아우른다. 그러나 시선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지점을 바라본다.

저자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남북한이 주체가 돼 주변국의 동참을 유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외교관이자 공직자인 개인의 회고록으로서 자신의 할 일과 나아갈 길을 분명히 아는 프로페셔널리즘의 빛나는 순간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노무현, 반기문, 조지 W. 부시, 콘돌리자 라이스와의 일화를 비롯해 협상 공간과 사석에서 마주친 외교전문가들에 대한 스케치는 역사적 현장의 생생함을 더한다.

송민순 지음, 2만7000원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