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인쇄인·소설가 등 각 분야 전문가 창간 주도
▲ 1947년 9월11일 인천시립우리예술관(현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찍은 인천시정기사단 결성 기념사진. 기관장 및 언론인 54명이 이 사진에 담겨있다. 대중일보 소속 언론인으로는 송수안 당시 전무와 이벽 기자가 사진 촬영에 함께 했다. /자료=인천언론사 발췌

대중일보 창간을 주도한 인물들은 인천에서 터를 잡고 활동했던 '인천사람'들이다. 이들은 태어난 곳은 각기 달랐어도 인천을 무대로 사업가, 인쇄인, 의사, 소설가 등 자기만의 분야에서 맹활약하던 인물이었다.

창간 추진위원장 송수안

▲ 창간 추진위원장 송수안

언론인 송수안(宋壽安 1903~1983·사진)은 대중일보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매일신문 인천지사를 시작으로 대중일보 창간을 거쳐 인천신보, 기호일보, 경기매일신문에 이르기까지 경영자로서 불편부당의 곧은 정신을 지켰다.

그는 1903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920년즈음 인천생활을 시작했다. 시청 앞 거리에서 땜장이 일을 하는 친형과 함께 풀무질을 하다가 과수원에 취업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어린 나이에 장사수완과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자신이 일하던 과수원의 부잣집 맏사위로 들어간다. 강한 사업가 기질을 바탕으로 피복업에 뛰어들거나, 인천상공회의소 평의원에 선출되는 등 지역 사업가이자 유지로 활동했다.

언론의 길로 들어선 건 경영이 어려워 진 매일신문 인천지사를 인수한 1944년부터다. 이듬해 광복을 맞자 대중일보 창간에 뛰어든다. 송수안은 대중일보 창간 추진위원장에 취임해 뜻있는 인사를 규합하고 스스로 전무 겸 편집인에 올라 신문사 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대중일보, 인천신보, 기호일보, 경기매일신문으로 이어진 30여년간의 인천언론의 역사를 사업가로서 직접 써내려갔다.

특히 신문이 독재정권에 맞서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편집권 독립을 보장한 뜻있는 언론인이기도 했다. 1973년 유신정권의 폭압적인 1도1사 통합으로 경기매일신문을 송두리째 잃은 후에는 서울에서 인쇄업을 경영했다고 전해진다.

제작·편집·주필 겸한 이종윤

▲ 제작·편집·주필 겸한 이종윤

이종윤(李種潤 1899~1967·사진)은 일본에서 동경고등공예학교 인쇄과를 나와 활판인쇄소 선영사를 운영했던 인물이다.

그의 선영사는 인천 유일의 한국인 인쇄시설이라는 점 때문에 대중일보가 태어날 수 있는 모태가 됐다. 광복 후 전국 최초의 지역신문이 어떤 지역보다 빠르게 발간할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의 활약은 인쇄인(제작국장)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중일보에서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며, 인천신보와 경기매일신문의 시대로 넘어와서는 부사장직에 올라 편집국장을 겸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누구보다 업무에 밝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주필 업무도 상당기간 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대 사장 고주철

고주철(高珠澈 ?~?)은 대중일보의 초대 사장을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사학자로 이름을 알린 우현 고유섭 선생의 숙부이기도 하다. 대중일보를 창간할 당시 애관극장 앞에서 외과병원을 운영했다. 대중일보의 실질적인 자본주였고, 창간 이듬해 1월1일 사장으로 취임한다.

고주철 사장은 청년 시절에도 의사업계에서 명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아일보 1921년 11월4일자에는 '의사계에서 명성이 있는 고주철이 만주 동포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기 위해 떠난다'는 소식이 실려있다. 우현 선생의 숙부답게 문화·예술 분야 행사에 많은 후원을 했다.

▲소설가이자 언론인 엄흥섭

엄흥섭(嚴興燮 1906~?)은 해방 이후 인천에서 언론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대중일보의 초대 편집국장을 맡았고, 인천신문기자회 위원장직을 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좌파 문학인의 모임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 가입해 활동했고, 좌파 시인 임화의 시를 대중일보 창간시로 싣기도 했다.

대중일보와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창간 이듬해 3월 인천신문의 초대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대중일보의 논조가 중도적으로 바뀌자 반발해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인천신문에서 서울 제일신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1951년 월북했다.


/박진영·송유진 기자 erhis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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