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영화란 하오: 근대 영화비평의 역사>
▲ <조선영화란 하오
:근대 영화비평의 역사>
편저자 백문임·이화진·
김상민·유승진
창비
780쪽, 4만원

1900년대~광복 … 논객 비평문 엮어
14개 주제별 글·스크랩·사진 첨부
'아리랑'·'월하의 맹서' 등 작품연구


문화의 큰 중심축인 영화가 현대인들만을 사로잡은 건 아니다. 1895년 탄생한 영화는 이후 조선에 들어와 프로문예비평가들을 양산했다.

임화, <상록수>의 심훈, <태평천하>의 채만식 등 조선에서 글 깨나 쓴다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논객들은 당시 전문영화인이 아님에도 영화를 보고 말을 보태며 조선영화가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 지 논쟁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과연 영화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새책 <조선영화란 하(何)오: 근대 영화비평의 역사>(창비·780쪽)는 1910년대부터 광복 이전까지 조선영화를 둘러싸고 전개된 영화비평문을 엮은 해설서다. 백문임·이화진·김상민·유승진 등 4명의 편저자는 조선영화사의 윤곽을 그리는 데 가장 핵심적인 비평문 55편을 선별했다.

이 영화들을 초기영화, 변사, 사회주의 영화운동, 토키(talkie, 발성영화), 기업화론, 전쟁과 국책(國策) 문제 등 14개 주제로 구분하고 각 주제마다 편저자의 해제와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목록을 실었다.

당시 조선영화 생산·수용 현장의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는 신문·잡지 기사를 '스크랩'으로 덧붙이고 영화 장면과 제작·상영 현장, 영화인들을 담은 150점가량의 사진을 첨부했다.

▲ 나운규 아리랑


우리 근대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춘원 이광수는 1916년 발표한 <문학이란 하(何)오>에서 문학을 "특정한 형식하에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발표한 것"으로 정의한다. 형식과 이를 통해 표현하는 내용(사상·감정)은, 근대에 정립된 모든 예술장르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서구식 근대를 대표하는 문명이자 기술이자 예술로서 영화가 도입된 이래, 영화를 감상하고 제작하는 이들은 바로 그 조선영화가 어떤 형식을 띠고 어떤 내용을 담아야 좋을지 고민했다.

<조선영화란 하오>는 조선영화의 역사가 언제 시작됐는가에서 출발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조선영화' 개념은, 지금 우리가 '한국영화'로 지칭하는 대상과 다른 층위에 놓여 있다. 조선영화는 시기적으로 1900년 전후 초기영화부터 1945년 광복 전 신(新)체제하 영화까지를 일컫는다.

광복 후 '한국'의 입장에서, 그 이전까지 이 땅에 살아 움직여왔던 영화를 '한국영화'에 포섭해버린다면 식민지 조선의 영화가 띠고 있던 이질성이 상당 부분 휘발되고 만다. 그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 편저자들은 '조선영화' 개념을 고수한다.

이때 조선영화의 역사는, 조선인 스탭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던 시기를 기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에서 영화를 들여와 관람하며 영화에 대한 나름의 상을 잡아가던 '감상만의 시기' 영화활동까지를 아우른다.

1923년 무대극 없이 필름으로만 구성된 영화 <월하의 맹서>가 만들어지고, 같은 해 조선 최초의 장편 상업영화 <춘향전>이 개봉하면서 조선영화는 제작의 시대로 돌입한다.

▲ '월하의 맹서' 영화 한 장면.

이는 영화를 근대 문명의 일환으로, 서양에서 건너온 신기한 발명품으로 경탄하며 바라보던 데에서 나아가, 자본·기술·인력이 집약된 산업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조선 영화산업에서 일본인과 일본자본의 투입은 불가피했고, 이는 클로즈업 등 영화기법, 그리고 좀더 나중 일이지만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한 전시체제에서 내선일체를 표방하는 주제의식에 이르기까지 조선영화의 형식과 내용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운규의 <아리랑>(1926)은 동시대 조선 농촌을 배경으로 식민지 현실을 담았다는 점에서 '민족영화'로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의 두번째 작품으로 조선인 스탭과 배우, 제작진만으로 꾸려진 영화라는 점에서도 '가장 조선영화다운 영화'로 여겨졌다. <아리랑>이 당대 사람들의 이목을 끈 이유는 단성사에서 개봉해 전례 없는 흥행성적을 거뒀고, 이는 조선 대중이 열광하던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을 재현한 덕이 컸다.

이 책에 실린 나운규의 글 <조선영화 감독 고심담: <아리랑>을 만들 때>(1936)를 통해 '조선영화는 돈 내고 볼 재미가 없다'던 대중의 인식을 빠른 전개와 화면기법으로 돌려놓은 데 대한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식민지 근대라는 테두리 안에서 조선영화를 읽을 때 '민족(주의)적 성격'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다 보면, 영화매체가 가진 영화적 속성과 대중성을 간과하기 쉽다. <아리랑>의 사례에서 보듯, 조선영화가 당시 추구하던 바가 무엇이며, 조선 대중이 원하는 영화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조선에 수입된 외국 영화와 관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조선영화란 하오>는 연구 역사가 비교적 짧은 영화연구 분야에서 묵묵히 고투를 벌여온 이들의 공동성과물이다. 편저자 백문임·이화진·김상민·유승진은 '시네마바벨'이라는 연구모임을 통해 <조선영화와 할리우드>(2014)를 함께 펴낸 바 있다. 4만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