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영 객원논설위원
   
 


우리 산하(山河)에 내리는 빗물이 방울져 한 몸으로 흐르기 시작하니 골이 되고, 골을 만들어 흐르는 물은 모여 내(川)를 만들고, 냇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합쳐서 강(江)을 만든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막히면 비켜가고 또 막히면 돌아 물길을 만들어 낮은 곳을 향할 뿐이다.
한강은 태백산 금대봉 중턱 백두대간(白頭大幹) 서쪽 창죽동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해 514㎞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오대산에서 시작한 오대천을 더해 이름을 조양강이라 격을 높이고, 서해를 향해 흐르는 강물은 영월에서 숫강(♂江) 노릇을 하며 동강(東江)으로 되고, 암강(♀江)이라 불리는 평창강은 영월의 서쪽을 휘돌아 서강(西江)으로 됐다. 그리고 영월 두물머리에서 한 몸으로 태어나 남한강(南漢江)이란 이름으로 서해를 향한다. 양평까지 흘러온 강물은 속도를 점점 줄이더니 흐르기를 포기하고 물에 가라앉았다. 북한강에 그 몫에 반을 빼앗긴 남한강은 이름과 함께 팔당호로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두물머리에 잔잔한 그림자만 남기고 두 강이 하나의 강으로 됐다.

팔당대교를 끝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한 한강은 25개 다리를 떠받치고 아파트를 둑으로 삼아 서울을 빠져 나간다. 온갖 다리 아래를 통과한 강물은 민족의 시련을 길게도 이어온 임진강과 만나 한강의 넓은 품속을 끌어안고 서해로 흐른다. 마지막으로 합작해 유도(留島)라는 작은 섬 하나만 남겨놓고 514㎞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한강이 지금의 흐름으로 모이도록 역할을 해준 남쪽 울타리가 한남정맥이다. 속리산에서 안성 칠장산까지 한남금북정맥으로 물길을 안내하고, 칠장산에서 용인 석성산, 수원 광교산, 군포 수리산에서 인천 계양산으로, 그리고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한남정맥의 능선이 낮으나마 남쪽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물길을 안내해 서해로 흐르게 하니 이 물이 한강(漢江)이다.
그러나 남쪽으로 산을 넘지 못하도록 울타리 구실을 하던 한남정맥의 허리가 잘렸다. 계양산에서 문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계양산 아래에서 경인운하인 아라뱃길에 끊어진 것이다. 물이 산을 넘었다. 칠장산에서 문수산까지 이어지던 172km의 분수령이 물에 잘려 물을 갈라놓는 분수(分水) 기능을 잃었다.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 만월산에서 발원해 한강으로 흘러가는 굴포천을 치수한다고 벌인 사업이 경인운하사업으로 변경되고, 다시 아라뱃길 사업으로 바뀌었다. 부천과 김포 일부 지역 물난리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조성된 개울인 굴포천은 치수사업이 불가피했다.
아라뱃길이란 이름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문화가 의미하는 뱃길의 뜻과 한강의 옛이름인 '아리수'를 연상해 아리랑의 후렴구인 '아라리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인천시 서구 경서동(서해)에서 김포시 고촌읍(김포대교) 한강까지 갑문을 포함해 총연장 18㎞(폭 80m, 수심 6.3m)의 주운수로를 만들어 관광과 물류를 위해 만든 뱃길이다. 잘려진 김포반도는 인천에서 12개 다리로 연육(連陸)됐지만 능선은 물 밑으로 가라앉아 분수령(分水嶺)의 의미는 없어졌다.
웃지 못할 얘기 하나를 꺼내보자. 지난해 3월 어느 날 예약을 하고 김포터미널에서 오후 3시쯤 인천행 배를 탔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부부 두 사람뿐이었다. 아주 미안하고, 고맙게도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한 '대절 유람선'이 됐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에 우리는 배안을 활보하며 손님 노릇을 톡톡히 했다.
교과서에는 기술되지 않았지만 김포시는 섬이다. 동쪽으로는 김포대교에서 시암리까지 한강으로, 북쪽으로는 시암리에서 보구곶리까지 임진강을 품은 한강으로, 서쪽으로는 강화도 사이에 염하강으로,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라뱃길인 경인운하로 사방이 물길이다. 다만 서해나 남해 여느 섬처럼 연육교(連陸橋) 12개로 이어졌을 뿐이다. 배를 타고 건너지 않으니 김포시민들은 섬인지 모르나 보다. 김포가 섬이니 경기도에는 유인도가 6개로 늘었다. 안산시 풍도·육도, 화성시 제부도·국화도, 10가구에 인구 15명인 입파도를 포함해 인구 28만7000여 명의 김포도(金浦島)까지 말이다. 교과서를 다시써야 하겠다. 그리고 알려야겠다. 김포 섬사람들한테.